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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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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조 (派祖)

 

전릉부원군 류의(柳儀)

 

 

상위 계보

 

시조    류    습(柳   濕)

 

2세     류극서(柳克恕)

 

3세     류    빈(柳   濱)

 

4세     류말손(柳末孫)

 

5세     류계장(柳季)

 

6세     류    헌(柳   軒)

 

7세     류세린(柳世麟)

 

8세     류   의(柳   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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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인사말

 

 

 

  전주류씨 낙봉공파종중 종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종중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종중은 전주류씨 6세 낙봉공(諱 )을 파조로 모시는 전주류씨 대종중 산하의 지파 종중입니다.

    파조이신 낙봉공은 연산군 10년(1504년) 대사간 직에 계실 때 폭정의 부당함을 간언하시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셨습니다. 1506년 9월 18일 중종반정으로 조정으로부터 복귀 명령을 받고 귀경길에 오르셨으나 해상에서 왜구의 피습으로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향년 45세이고, 관직 경력이 15년이었다. 조정에서는 기대했던 큰 인물의 변고를 애석하게 생각해서 이조참판의 중직을 추증하고 후일 청백리에 선정하는 은전을 베풀었습니다.

    낙봉공의 성덕으로 장남(휘 세붕)은 종친부 전부공, 차남(휘 세린)은 문과급제 후 이조참판, 삼남(휘 세구)은 종친부 전첨, 사남(휘 세봉)은 종친부 사과 직에 오르셨다. 이후 손자들은 판서, 영의정 등 높은 관직에 오르시는 등 전주류씨 문중에서 어떤 종파보다도 자손이 크게 번창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됨으로써 집성촌을 이루어 끈끈하게 유지되어오던 가문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친척간의 유대관계가 크게 약화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욱이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사회가 가문중심이나 혈통중심이 아니라 능력우선의 개인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족보의 상징적인 의미는 점점 퇴색해지고 있습니다. 즉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가문이 아니라 개인 능력이 사회를 주도하는 힘으로 부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에서, 또 지금도 ‘근본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때 그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이 족보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족보는 피의 기록이며 혈연(血緣)의 역사이므로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가 변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본관(本貫)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자신의 계보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어느 종파(宗派)에 소속되는지 알아두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종중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젊은 종인들에게 가문에 대한 유익하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종중 사업을 홍보하며, 종인 상호간에 정보 교류를 위하여 홈페이지를 제작하여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여 정보를 공유하시고 참여마당을 이용하여 좋은 의견이나 글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수원(水源) 없는 강물 없고,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祖上)  없는 후손(後孫)없다

 

전주류씨 낙봉공파종중  회장   류  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