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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39/03/01(기사)
경기 암행 어사 심집(沈?)이 아뢰었다. "이천 부사(利川府使) 이광길(李光吉)은 처사가 정미롭고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이에 힘입어 농사에 전력할 수 있습니다. -中略- 포천 현감(抱川縣監) 홍서룡(洪瑞龍)은 세가(勢家)와 소민(小民)에게 부역(賦役)을 균등히 매겼고 통진 현감(通津縣監) 류열(柳悅)은 해묵은 폐정(弊政)을 하루아침에 제거하였으니, 이 네 사람은 치적은 매우 좋으나 모두가 부임한 지 아직 오래지 않습니다. 양주(楊州) 사람들은 윤의립(尹義立)을 사모하여 구리를 모아 거사비(去思碑)를 세우려 하였고, 죽주(竹州) 사람들은 이유홍(李惟弘)을 추모하기 위하여 방금 비석을 세워 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체직된 수령이므로 추론(追論)할 것은 없으나 민간에게 사랑과 은혜를 끼친 일은 묻어버릴 수 없기 때문에 상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전】 25 집 167 면
광해04/03/19(계축)
친국이 있었다. 정이(貞伊), 이천수(李千壽), 중 천인(天印), 류제(柳悌), 류항(柳恒), 류열(柳悅), 류업(柳忄業 )에게 공초를 받았다. 정이는 김덕재(金德哉)의 아내이고, 이천수는 출행장(出行狀)을 봉산(鳳山)에 바쳤는데 신율이 역적의 공초에서 거론된 사람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체포하여 보낸 자이고, 류제, 류열, 류업은 영경의 아들이고 류항은 조카이다. 【원전】 32 집 34 면
광해04/04/16(경진)
전교하였다. "역적의 괴수가 3일에 한 번씩 류가(柳家)에 편지를 보낸 정상이 역적의 공초에서 드러났으니, 그의 아들이 사형을 면한 것만도 다행이다. 류열(柳悅)을 먼 곳으로 귀양보내라." 【원전】 32 집 48 면
광해04/06/27(경인)
의금부가 아뢰기를, "류영경의 아들 류열(柳悅)과 이홍로의 아들 이승원(李承元)․이승형(李承亨), 이승업(李承業) 등이 모두 배소에 있으니, 본부의 낭청을 나누어 파견하여 잡아다가 처치하소서. 류업(柳忄業 )은 분명히 폐질자이니 법전에 의하여 연좌를 면하게 함이 마땅할 것 같고, 이 밖에 그 죄가 응당 연좌되어야 하는데 누락된 자 및 김일승(金日昇) 등의 부자 이하 연좌자는 모두 경외의 담당관으로 하여금 자세히 조사하여 보고하게 한 후 처치함이 또한 마땅하겠습니다. 정의민이 살던 고을 평산(平山)과 김일승이 살던 고을 봉산(鳳山) 등의 읍호를 강등하고 수령을 파직하는 일은 다른 전례에 의하여 거행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류업은 절도(絶島)에 안치하고, 평산, 봉산의 읍호 강등과 수령 파직의 일은 아직 거행하지 말라."하였다. 【원전】 32 집 81 면
광해04/07/18(경술)
<금부가 죄인 류열(柳悅), 이승형(李承亨)을 당고개(堂古介)에서 교수로 처형하고 아뢰었다.>【류영경의 아들 류열, 이홍로의 아들 이승형, 이승원(李承遠)을 잡아다 죽였다.】 【원전】 32 집 87 면
광해04/08/06(정묘)
<이조의 계목에, "전 병사 심열(沈悅)은 죄인 류열(柳悅)과 이름이 같으니, 형(惇) 자로 이름을 고쳐서 문서를 내주소서."하였는데, 아뢰자 윤허하였다.>
【원전】 32 집 90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