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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37/06/22(신축)
박승조(朴承祖)를 삼등 현령(三登縣令)으로, 홍직(洪稙)을 강계 판관(江界判官)으로, 이상룡(李祥龍)을 회령 판관(會寧判官)으로, 심욱(沈旭)을 홍주 판관(洪州判官)으로, 조성(曺珹)을 경주 판관(慶州判官)으로, 정여충(鄭汝忠)을 우봉 현령(牛峰縣令)으로, 민여신(閔汝信)을 고산 찰방(高山察訪)으로, 류제(柳悌)를 송화 현감(松禾縣監)으로, 홍매(洪邁)를 지평 현령(砥平縣令)으로, 김영국(金榮國)을 청양 현감(靑陽縣監)으로, 정홍좌(鄭弘佐)를 영서 찰방(迎曙察訪)으로, 이자징(李自澄)을 남해 현령(南海縣令)으로 삼았다. 【원전】 24 집 622 면
선조37/11/17(계사)
황시(黃是)가 의금부의 말로 아뢰기를, "신이 신 류근(柳根), 신 허성(許筬), 신 남이신(南以信) 등과 회동하여 성비(聖批)를 보건대, 성교(聖敎)가 지극히 마땅합니다. 당초에 신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삼성(三省)의 중대한 옥사는 쉽사리 처결할 수 없으니 충분히 상세하게 살펴서 미진한 점이 없게 해야 한다. 따라서 문안(文案)에 있는 초사(招辭) 이외의 전파된 말 중에서 옥사에 관계되어 끝내 덮어 둘 수 없는 말이 있다면 아울러 살펴서 참고 해야 한다.'고 여겼으므로, 이미 들은 바가 있는 것을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의 이 말은 송화 현감(松禾縣監) 류제(柳悌)가 회맹제(會盟祭)에 참여하는 일로 올라올 때에 감사(監司)의 영문(營門)에 들렸더니, 권희(權憘)가 안대남(安大楠)이 전시(典示)한 글을 내어 보였는데, 글 가운데에 대개 미친 사람 한중부(韓仲孚)라는 말이 있었다 한 데서 유래합니다. 그런데 이른바 중부는 한언침(韓彦?)의 자(字)입니다. 안대남은 신잡(申캈)의 누이의 아들이고 권희의 사위입니다. 이 때문에 권희의 아우 권협(權?)이 안대남에게 그 사연을 물었더니, 안대남이 말하기를 '그 글에 한중부가 바야흐로 재령군(載寧郡)에 가 있다 하였는데, 한 중부가 어찌 함께 일을 의논할 자이겠는가…….' 하였습니다. 신들은 한언침이 그 때 무슨 일로 재령군에 갔는지 모르겠고 또 의논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기에 그 사이의 곡절을 알려고 감히 번거롭게 여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상교(上敎)를 받으니 과연 지당합니다. 다만 류제 등에게 물어야 할 듯한데 류제 등에게 물어야 합니까? 뒤폐단이 염려될 경우 우선 문안에 있는 초사에 따라 최관(崔灌)이 나래(拿來)되거든 추열(推閱)하여 참고해서 처치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해야 합니까?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하니, 전에 아뢴 사연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원전】 24 집 699 면
선조38/11/30(경자)
류몽인이 임진년에 어가(御駕)를 따라 평양(平壤)에 갔었는데 왜적이 이른다는 말을 듣고 도망쳤으니, 이는 곧 임금을 망각한 사람이다. 일찍이 별성(別星)으로 관서(關西)에 가서 도사(都事) 성안의(成安義)의 첩인 영유(永柔) 고을 여인이 미색임을 듣고 그 고을로 달려가 별성의 위력으로 접간하여 탈취해 왔다가 그후 다시 조정견(趙庭堅)에게 빼앗겼다. 황해 감사가 되었을 때에는 송화 현감(松禾縣監) 류제(柳悌)의 비(婢)가 미색임을 듣고 불러내어 접간하려는 것을 류제가 누차 막았는데 몽인은 끝내 나오게 하여 접간하고 말았으니 그의 음란함이 이와 같았다. 이는 미색을 좋아해서일 뿐만 아니라 류제가 곧 류영경(柳永慶)의 아들이기 때문에 영경의 비부(婢夫)가 되어서 아첨하고자 하는 계획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당하관 때에 영유의 일로 인해 물의에 버림받은 바 되었었는데 전관(銓官)에게 애걸하여 응교가 되고 이어 당상관으로 승격되었다. 배은 망덕이 곧 그의 평생 장기였다. 형의 사위 류경종(柳慶宗)이 일찍이 대간(臺諫)으로 권간의 일을 논박하다가 쫓겨나자 몽인은 그 누가 미쳐 노여움을 받을까 염려한 끝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경종의 비행을 극언하였으므로 경종이 통분함을 참지 못하다가 수원(水原) 농막에 가 있을 때 가까이 접촉하던 사람을 만나 몽인이 기회를 타 모함하는 정상에 대해 호소하였다고 한다. 【원전】 25 집 140 면
선조39/03/07(을해)
황해도 암행 어사 윤효선(尹孝先)이 아뢰었다. "평산 부사(平山府使) 강복성(康復誠)은 자봉(自奉)에는 박하고 봉공(奉公)에만 힘썼고 아전들을 제어하는 데에 엄명하고 백성을 대함에는 은신(恩信)으로 하였습니다. -中略- 서흥 부사(瑞興府使) 류철(柳澈), 신계 현령(新溪縣令) 윤미(尹?), 송화 현감(松禾縣監) 류제(柳悌)는 모두 정사에 힘을 기울였으므로 아전을 단속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모두 조리가 있었습니다." 【원전】 25 집 168 면
광해04/03/18(임자)
류팽석을 국문하니, 공초하기를, "역변이 처음 발생했을 적에 제가 과연 신율에게 말하였습니다. 기유년에 제가 심원사(深源寺)에서 글을 읽었습니다. 장사(壯士)인 중[僧] 두 사람이 저녁에 옆 승방(僧房)에 투숙하였는데, 저는 혼자 자면서 두 중이 사사로이 하는 말을 몰래 엿들었습니다. -中略- 해주의 중이 또 강음의 중에게 말하기를 '근래에도 류영경(柳永慶)에게 편지를 보냈는가?' 하니, 강음의 중이 말하기를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3일에 한 번씩 편지를 보냈다.' 하였는데, 류항(柳恒), 류제(柳悌), 류훤(柳?) 등의 이름을 다 말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근일 이 세 사람을 모두 관원에 임명하게 된다.' 했는데 류제는 대장(大將)을 삼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말하기를 '이 두 생원(生員)의 관작(官爵)은 이로부터 높아질 것이다.' 했는데, 그 재상은 합천은 정인홍(鄭仁弘)이고 동래(東萊)는 정경세(鄭經世)입니다. 두 중이 저녁에 들어와서 유숙하고 다음날 새벽에 나갔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과 용모에 대해서는 모두 알 수가 없습니다. 응당 체포해야 할 다섯 사람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고 한 것은 바로 역당(逆黨) 4명인데 강응엽(康應曄), 강응린(康應?), 홍덕린(洪德쬧), 이세기(李世쨖)입니다. 이른바 십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한 것은, 제가 이미 직재 등과 편지를 통한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처음 체포할 적에 신율에게 말하였습니다."하였다. 【원전】 32 집 33 면
광해04/03/19(계축)
정이(貞伊), 이천수(李千壽), 중 천인(天印), 류제(柳悌), 류항(柳恒), 류열(柳悅), 류업(柳忄業 )에게 공초를 받았다. 정이는 김덕재(金德哉)의 아내이고, 이천수는 출행장(出行狀)을 봉산(鳳山)에 바쳤는데 신율이 역적의 공초에서 거론된 사람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체포하여 보낸 자이고, 류제, 류열, 류업은 영경의 아들이고 류항은 조카이다. 류제 등이 공초하기를, "저의 아비인 영경의 일문(一門)과 직재(直哉)의 패거리와는 서로 원수진 사이입니다. 기축년 옥사 때 직재를 정거(停擧)시켰으며 류영근(柳永謹)․영경(永慶)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을 적에는 직재를 배척하였으므로, 두 집안은 물과 불 같다는 것을 중외(中外)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함께 역모했을 리가 있겠습니까."하고, 류업은 미친병이 도져서 공초를 받을 수 없었으므로 아울러 가두었다. 천인(天印)과 천하(天河)는 이름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충청 감사 박이서(朴츺敍)가 적당인가 의심하여 체포하여 보냈다. 천인은 본디 허잠(許潛)의 손자인데 집안에서 죄를 얻어 중이 된 자이다. 【원전】 32 집 34 면
광해04/03/20(갑인)
지평 강익문(姜翼文)이 아뢰기를, "개미처럼 하찮은 소신(小臣)이 거듭 부름을 받드니 감격스럽고 황송하고 두려워서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역적의 변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즉시 달려왔어야 합니다. -中略- 또 듣건대 역적의 괴수가 적신(賊臣) 류영경(柳永慶)의 아들 류제(柳悌)를 대장으로 삼아 거사하려 했다고 하였습니다. 인홍이 전일 벌을 주자고 청한 자가 곧 적신인데 도리어 그의 아들과 모의하였단 말입니까. 신의 구구한 변명이 인홍에게 수치와 오욕만 끼치고 이렇게 친국하는 때를 당하여 번독스럽게 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신의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커졌습니다. 따라서 뻔뻔스레 무릅쓰고 있을 수 없으니 속히 신을 파직해 내쫓아 주소서."하니, 답하기를, "정인홍에게 어찌 의심스런 것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사양하지 말고 직무를 잘 수행하라."하였다. 【원전】 32 집 34 면
광해04/04/05(기사)
왕이 <서청으로 나아가> 친국하였다. 류제(柳悌), 김이승(金以升)에게 각각 1차 형문을 가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원전】 32 집 43 면
광해04/04/05(기사)
신희업(辛喜業)을 국문하여 2차 형신을 가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또 김이승(金以升), 류제(柳悌)를 국문하여 1차 형신을 가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원전】 32 집 43 면
광해04/04/09(계유)
전승업(田承業), 황곤건(黃坤健), 박대수(朴大秀), 박대준(朴大峻), 고세룡(高世龍)을 국문하여 1차 형신을 가하고, 류제(柳悌), 황혁(黃赫)에게 2차 형신을 가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원전】 32 집 45 면
광해04/04/13(정축)
황상(黃裳), 전승업(田承業), 황곤건(黃坤健), 김천복(金千福)에게 압사형을 가하고 국문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류제(柳悌)에게 3차 형신을 가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원전】 32 집 46 면